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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땅의 옛 문화를 또렷이 보여주는 뽕나무 한 그루 날짜 2020.05.30 17:30
글쓴이 고규홍 조회 150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

[나무를 찾아서] 이 땅의 옛 문화를 또렷이 보여주는 뽕나무 한 그루

  다시 상주에 다녀왔습니다. 이 즈음 상주 지역의 도심을 빼고 난 시골 길을 걸으려면, 길 위에 무수히 떨어진 까만 오디를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마을에서 나무를 찾아 걷는 길이 그렇습니다. 상주의 특산물을 상징하는 ‘삼백三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쌀과 비단을 짜는 명주실, 곶감의 표면에 묻어나는 하얀 가루를 가리키는 거죠. 오디를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건, 이 지역에 오디를 맺는 뽕나무가 많다는 이야기이고, 오래 전부터 뽕나무를 많이 키웠다는 건 뽕잎을 먹고 자라는 누에를 많이 쳤다는 이야기로 이어지며, 그 누에로 질 좋은 명주실을 뽑아내 값비싼 비단을 자아냈다는 이야기입니다.

○ 까맣게 익은 뽕나무 오디가 사람없는 골목길에 떨어져 ○

  요즘이야 비단의 값어치가 옛날만큼 높거나 특별하지 않지만, 농경문화 위주의 옛 세상에서는 뽕나무가 재산의 척도였고, 더불어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절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때 상주 지역은 나라 안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비단을 생산한 지역이었던 겁니다. 지금 만날 수 있는 거개의 뽕나무들은 그 시절에 일부러 심어 키우던 나무들의 후손들입니다. 틀림없이 옛날에는 지금 뽕나무가 있는 주변에 무성한 뽕밭이 있었겠지만, 지금 뽕밭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최소한 그 동안의 제 답사 길에서는 뽕밭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냥 골골샅샅 조붓한 골목길 곁 여기저기에서 한두 그루씩 아무렇지도 않게 자랄 뿐입니다. 그 나무들이 무성하게 맺은 오디가 지금 막 떨어져 바닥에 깔리는 중입니다.

  여느 지역에 비해 개체 수가 많기도 하지만, 이 지역의 상징이기도 한 뽕나무를 찾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 한때 상주의 영화를 상징할 만한 뽕나무 한 그루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난 해에 천연기념물 제559호로 지정한 ‘〈상주 두곡리 뽕나무〉’입니다. 천연기념물로는 이미 2006년에 천연기념물 제471호로 지정한 ‘서울 창덕궁 뽕나무’에 이어 두 번째 나무입니다. 지방기념물로는 서울시기념물 제1호인 ‘서울 잠실 뽕나무’와 강원도기념물 제7호인 ‘정선 봉양리 뽕나무’가 있지요. 뽕나무의 고장을 대표하는 〈상주 두곡리 뽕나무〉가 마침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마을 어귀의 은행나무가 반기는 두곡리 뽕나무 마을 ○

  〈상주 두곡리 뽕나무〉를 만나려면 상주시의 북쪽에 속하는 은척면으로 가야 합니다. 문경시 농암면과 붙어있는 곳입니다. 국도를 벗어나 마을 길을 따라 들어서면 뽕나무보다 먼저 길손을 반기는 건 은행나무입니다. 마을 앞논 가장자리에 홀로 우뚝 서 있는 은행나무는 멀리서도 이 마을의 상징으로 한눈에 들어옵니다. 나무 바로 앞에는 마을회관과 마을보건센터가 있지요. 마을 사람들이 자주 만나는 마을의 중심인 자리가 바로 은행나무 바로 앞에 있습니다. 450년 정도 살아온 이 은행나무는 15m 쯤 되는 높이에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8미터가 넘는 큰 나무입니다. 사방으로 펼친 나뭇가지의 폭이 20미터 정도 되는 매우 우람한 나무입니다.

  이 은행나무는 ‘경상북도기념물 제75호’이니 천연기념물인 뽕나무에 비하면 국가에서 부여한 지위가 낮은 편입니다만, 마을 사람들로서는 이 은행나무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뽕나무 못지 않습니다. 심지어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평안을 지켜준 건 모두 이 은행나무 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심지어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보며 가을 풍년을 예측했다고 합니다. 즉 가을 들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잎이 하루이틀 사이에 죄다 떨어지면 이듬해 농사는 풍년이 들고, 잎 떨어지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면 흉년이 든다고 믿을 정도입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의 과학적 근거는 살피기 어렵습니다만, 마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나무에 기대어 살아왔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 열매인 새까만 오디를 무성하게 맺는 암나무 ○

  은행나무 그늘에 들어 땀을 식히고 마을 안쪽의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서 백오십 미터 쯤 들어서면, 〈상주 두곡리 뽕나무〉를 만날 수 있습니다. 돌아보니, 나무를 만난 건 꽤 오래 됐고, 더구나 천연기념물에 지정된 뒤로는 처음입니다. 그 사이에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만, 나무 주변 풍경은 그대로입니다. 달라진 게 없어 보입니다. 자동차 한 대가 들락이기 어려운 좁다란 길이나 나무 앞으로 펼쳐진 마을 앞논까지 모두가 그대로입니다. 나무높이 10미터, 가슴높이 줄기둘레 4미터에 이르는 이 뽕나무 그늘에도 까맣게 익은 오디가 널렸습니다.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는 뽕나무 가운데 오디를 무성하게 맺는 암나무임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10미터 높이의 나무를 다른 종류의 나무에 비해 생각하면 크고 웅장한 모습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뽕나무 가운데에는 이만큼 큰 나무를 보기가 어렵지요. 나라 안에서 가장 몇 그루의 뽕나무 가운데에 한 그루인 거죠. 이 나무보다 큰 뽕나무는 아마 한두 그루밖에 없습니다. 나무 앞에 천연기념물 안내판이 새로 세워지긴 했지만, 나무 주변의 쇠울타리는 예전 그대로입니다. 울타리 안쪽의 나무 앞에는 두 개의 비가 세워져 있는데, 하나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기 전 ‘경상북도 기념물’임을 알리는 비이고, 다른 하나는 일제 강점기 때, 상주군수를 지낸 최병역이 세운 ‘명상기념비名桑記念碑’입니다. 오래 전부터 이 나무가 얼마나 귀하게 여겨왔는지를 보여주는 또렷한 증거입니다.

○ 농경문화 시대의 흔적으로 오래오래 보존해야 할 나무 ○

  〈상주 두곡리 뽕나무〉는 조선 인조 때 이 지역의 뽕나무 재배를 권장하던 때에 심은 것으로 짐작됩니다. 나무의 나이를 350살 정도로 보는 근거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또 하나의 천연기념물 뽕나무인 서울 창덕궁 뽕나무보다 높이는 좀 작아도 줄기 둘레가 조금 더 굵습니다. 그래서인지, 얼핏 봐서는 서울 창덕궁 뽕나무보다 훨씬 듬직해 보입니다. 〈상주 두곡리 뽕나무〉에 달리는 뽕잎만으로 한때는 누에고치를 30킬로그램이나 생산해냈다고 마을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전체적으로 둥글게 자란 수형 또한 매우 빼어난 모습입니다. 상주 지역은 물론이고,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살아온 우리 민족 모두가 오래 보존해야 할 귀중한 나무입니다.

  상주에서 만나본 또 다른 아름다운 나무들의 이야기들은 두고두고 마음 깊이 간직해두고, 《나무편지》에서 짬 되는 대로 천천히 전해드리기로 하고 다시 또 길 떠날 채비에 나서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나무 한 그루에 담긴 사람살이의 옛 흔적을 생각하며 6월 1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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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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