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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묵묵히 佛地 지키는 집사 - 경향신문 2004. 6 날짜 2004.06.19 14:57
글쓴이 고규홍 조회 3609
경향신문 2004-06-05


묵묵히 佛地 지키는 집사


절집에 들어서려면 세가지의 문을 지나야 한다. 속세의 번잡함을 떨쳐버리는 일주문(一柱門)과, 사람의 본성에 자리잡은 그릇된 생각을 버리는 천왕문(天王門)을 통과한 뒤 불이문(不二門)을 지나야 부처의 성스럽게 살아있는 불지(佛地)에 들어서는 것이다.

하나 더. 수백년 이상 온갖 풍상을 겪어가면서 묵묵히 절집을 지켜온 나무, 나무들. 절집에 들어서면서 숱한 사연을 담고 있는 절집 나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절로 고개가 숙여질 터이다.

화순 송광사 극락전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단풍나무 두 그루. 나무 줄기에 심한 그을음이 남아있다. 바로 쌍봉사 전체가 화마에 휩싸였을 때 제 몸을 불사르며 극락전(서방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을 지켜낸 기특한 나무이다. 이 나무 덕분에 아미타불은 사셨다. 그러니 단풍나무에 서린 불성(佛性)은 대단한 것이다.

자신의 성(性)을 바꾸면서까지 불가(佛家)를 지켜냈다는 전등사 은행나무. 조선후기 조정은 불교탄압의 구실로 전등사 은행나무 열매의 공출량을 정했다. 절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세금'이었다. 못 견딘 스님들은 "차라리 이 나무를 암나무에서 수나무로 바꿔달라"고 기도했다. 이 기도대로 암나무는 수나무로 성전환했고 공출량을 정할 수 없었던 조정은 더 이상의 탄압을 포기했다.

정선 정암사에 있는 주목을 보면 얼마나 신비로운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중 하나인 정암사는 자장율사가 신덕여왕 7년(638년) 세운 절집이다. 그런데 자장율사는 자신의 주장자를 신표로 꽂았는데 이것이 주목이 됐다.

이 주목은 언제인지 모르지만 죽어버렸다. 그러나 껍질만 남은 나무 안쪽에서 새로운 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육신을 남겨둔 채 떠났던 자장율사가 다시 돌아와 자신의 껍데기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인가.

이밖에도 저자들이 발품을 팔아 꾸민 이 책에는 부처님의 은덕으로 숲 전체에 퍼진 오대산 상원사 전나무, 백범 김구의 나라사랑을 담은 공주 마곡사 향나무, 해마다 막걸리 열두말을 먹고 원기를 찾는 청도 운문사 처진 소나무 등 사람과 어울려 사는 절집나무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 이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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