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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 찾아 떠도는 사연 - 미즈엔 2004. 3 날짜 2004.06.19 14:54
글쓴이 고규홍 조회 3201
- 시사 여성 주간지 ‘미즈엔’ 2004. 3. 3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

기자 사표 던지고 나무 찾아 떠도는 사연


언제부턴가 메일박스를 열면 신문, 잡지 매체들이 보내는 뉴스레터들이 만만치 않게 늘어났다. 나름대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시선을 몇 초라도 더 붙잡아서 ‘클릭’의 열쇠를 따고 들어오게 만들까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매주 금요일 날아오는 아이위클리 뉴스레터에는, 텔레비전 채널 돌리듯 기계적으로 마우스를 눌러대며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잠시 멈추게 하는 것이 있다. 뉴스레터 지기인 고규홍(44)씨의 나무읽기 칼럼이다. IT산업과 경제 전문주간지 뉴스레터 이마빡에 난데없이 자리 잡고 앉아, IT의 I자에도 관심 없는 사람의 마우스마저 멈추게 하는 나무 사진과 글이 별난 것처럼, 그도 아는 사람 사이에서는 좀 유별난 친구로 통한다.

쓰고 싶지 않은 기사, 출근전쟁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의 인생이 보통에서 한 발짝 벗어나기 시작한 건 99년에 11년 동안 다니던 직장(중앙일보 기자)을 때려치우면서부터다.

“매일 아침저녁, 출퇴근하기가 너무 싫어집디다. 무표정하고 지친 얼굴로 지하철을 가득 메운 인파 속에 묻혀 헐레벌떡 달려가는 게 그렇게 지겨울 수가 없었어요.”

그나마 야근하다 지하철이 끊기면 서울역에서 난폭한 총알택시를 타고 손에 땀을 쥐어야 했다. 운전을 하고 다니면 좀 나을까 싶어 차를 샀지만 인천과 서울을 오가느라 하루 네 시간을 운전대에서 보내면 파김치가 됐다.

내가 꼭 해야 되는 일, 좋아하는 일이었으면 출퇴근길의 시달림쯤 견딜 수도 있었을 거다. 쓰고 싶지 않은 기사, 원치 않는 취재를 해야 되는 스트레스가 점점 어깨를 짓눌렀다.

“아내한테 얘기 했지요. 내가 결코 게을러서나 놀고 싶어서 사표를 내겠다는 게 아니라구요.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설득했습니다.”

연봉 5천만 원의 기자 수입을 포기하고 교사인 아내의 수입에 의지해 살림 규모를 줄여야했지만 그에게는 앞으로 살아갈 방향에 대한 계획이 있었다. 남보다 앞서 컴퓨터를 익혀, 기자 초년병 시절 <컴퓨터를 켜고 마음을 열고>, <기자를 위해 기자가 쓴 컴퓨터> 같은 관련 서적을 펴낸 바 있는 그는 인터넷 매체를 이용해 생태와 환경에 대한 글을 쓴다는 밑그림을 그렸다.

5년 후인 지금, 그는 뉴스 사이트 관리자 겸 나무 칼럼니스트 두 가지 활동을 하면서 ‘바이오’와 ‘디지털’의 전도사라는 말을 듣고 있다. 2001년 5월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발송해온 뉴스레터는, IT산업 종사자로 타깃 독자를 모으고 전문 뉴스를 제공하는 성공작으로 꼽힌다.

나무 전문가로서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나무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고 나라 안 이곳저곳의 천연기념물, 지방기념물 보호수에 대한 글을 써서 <이 땅의 큰 나무>(눌와)라는 책으로 펴냈다. 오는 봄에는 뉴스레터에 연재하고 있는 글을 모은 <절집의 나무들(가제)>이 출간될 예정이다.

월요일에는 춘천의 한림대에서 겸임교수로, ‘인터넷 뉴스 작성법’, ‘디지털 미디어의 글쓰기’등을 강의하고 목요일에는 감사를 맡고 있는 충남 태안의 천리포 수목원을 방문한다. ‘느리게 살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더 바쁜 몸이 되어 버렸다.


계절 바뀔 때마다 나무들이 어떻게 컸나 궁금해요

“기자 생활을 그만 둔 99년 겨울, 천리포수목원에서 흰 눈이 펄펄 내리는 추운 겨울 아침에 활짝 피어난 목련을 만나고는 나무와 시간, 혹은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됐고, 그때부터는 말없는 나무 안에 감춰진 사람살이의 이야기를 들춰내고자 안간힘하고 있음.”

‘사람과 나무와 시가 있는 곳’이라는 제목을 붙인 그의 홈페이지(www.tmebook.com)에서 그는‘나무 읽기’의 시작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후 지난 4년 동안, 사람들의 삶 속에 가지 뻗고 뿌리 내린 나무들을 찾아 매주 화·수요일이면 전국 일주에 나섰다. 한 해 평균 4만 킬로미터를 뛰고 있는 셈인데 50세까지는 이 수준을 유지하고 그 이후에는 일년에 2만 킬로미터 정도로 낮춰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계절마다 나무의 느낌과 모습이 다른 건 물론이구요. 시간이 흐르면 성장하는 생명체이다보니 어떻게 변했나 굉장히 궁금해요. 지난여름 태풍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걔네들’이 잘 있나 걱정이 돼서 찾아가 둘러봤어요.”

좋아하는 소재를 찾아 자유롭게 여행을 떠나고, 하고 싶었던 취재와 글쓰기를 하는 프리랜서 생활을 지탱하는 건 자신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생활 태도다.

“신문기자의 기사는 데스크가 책임을 나눠 갖지만 이제 나의 글은 온전히 나의 책임이에요.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지고 글을 만들기 위해 잠 못 이루는 밤을 거쳐야 합니다. ”

이런 애정과 책임감을 갖고 발품을 팔아 취재해 쓰는 나무 칼럼은, 40%라는 높은 오픈율을 자랑하는 아이위클리 뉴스레터 가운데서 가장 많은 독자 편지를 받는 코너다. 그의 나무 칼럼은 아마도 인터넷의 바다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퍼가서 자신들의 홈페이지니 블로그에 걸어놓은 ‘콘텐츠’ 중 하나일 것이다.

학생부터 먼 지방에 사는 가정주부까지 다양 각색의 독자들이 보내는 편지에 그는 꼭 성의껏 답장을 보낸다. 웹마스터는 문의 메일이 접수되면 24시간 안에 반드시 리액션을 취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기도 하다.

나무 전도사를 만났으니 곧 봄이 오면 서울 근교에서 나들이 가기 좋은 곳을 물어봐야할 것 같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의외로 아주 가까운 곳을 일러준다.

“꽃필 무렵에 창경궁에 가보세요. 정문 들어가 다리 양 옆으로 앵두꽃, 살구꽃, 매화꽃이 활짝 필 때면 서울 시내에 이런 곳이 있었나 놀랄 만큼 정말 아름다워요.”

오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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