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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씨 인터뷰 - 미디어 다음 2004. 2 날짜 2004.06.19 14:53
글쓴이 고규홍 조회 3334
 

- ‘미디어 다음’ 2004. 2. 2




"세상의 모든 사표는 훌륭하다"




나무 전문 칼럼니스트 고규홍씨




미디어다음/ 심규진 기자






“세상의 모든 사표는 훌륭한 거에요. 일단 사표를 냈다는 건, 뭔가 자신이 하고 싶은 게 있고 또 하고 싶은 의지가 있다는 거 아니겠어요?”




패기 넘치고 진취적이다. 그는 조직의 부조리와 억압에 불만을 느껴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거나, 나만의 사업으로 모두를 놀라게 할 ‘부자아빠’가 되겠다는 혈기 왕성한 30대 청년이 아니다. 나무 전문 칼럼니스트 고규홍씨, 인사동의 카페에서 만난 고씨는 45세라는 나이가 의심스러울 만큼 ‘동안’(童顔)이었다. 2시간 동안의 대화를 통해 살짝 들여다 본 그의 삶과 생각도 젊고 싱그럽다.




지난 99년 9월, 중앙일보사에서 일했던 그는 11년 동안의 기자 생활을 그만뒀다. 프리랜서로 나서서 큰 돈을 벌겠다거나 다른 사업을 하겠다는 계획도 없었다. 일단 저지르고 본 셈이다.




잘나가는 기자 생활을 그만 두고 나무 전문 칼럼니스트가 된 그는 요즘 뜨는 말로 ‘다운 쉬프트’ 족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삶의 ‘질’을 추구하는 ‘웰빙족’을 고찰해 보겠다는 기자의 거창한 인터뷰 요청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유기 농산물을 먹고 스파를 즐기며 요가를 한다는 속칭 말하는 ‘웰빙 트렌드’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저는 고액 연봉 기자 생활을 스스로 그만뒀다는 것 외에는 특이할 게 없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조직을 벗어나니 ‘생존’을 위한 생활이 더 고달파진 면도 있고요(웃음)”




그에게 회사를 그만 둔 특별한 이유를 물었다.




“사표 내기 전 한 일년 동안 컴퓨터 바탕 화면에 ‘사직서’라고 파일명을 만들어서 갖고 다닐 정도로 정말 회사 생활이 싫더라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어제와 똑같은 하루, 원치 않는 업무, 그런 거죠. 조직과 크게 불화하는 성격도 아닌데, 그냥 사소한 것들 누구나 공감하는 스트레스 있잖아요. 싫은 사람이 있어도 성질대로 못하고 매일 얼굴을 봐야 하고, 어떨 때는 옆 사람이 펜 빌려 달라고 하는 것도 괜히 싫지 않아요?(웃음)”




그는 최고의 인재라는 평가는 못 받았을지 몰라도, IMF 당시 살벌한 구조조정도 버텨냈을 만큼 ‘밥값’은 하는 기자였다. 사표를 내니까 치열한 경쟁에서 도태되는 사람도 많은데 왜 굳이 좋은 직장을 박차고 나가느냐고 묻는 사람도 많았다. 그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그래도 사표를 던지게 했던 눈에 보이는 계기 같은 것이 궁금해졌다. 역시 그답게 재기발랄하고 엉뚱하다. 시인 김지하의 기사를 쓰는 게 싫어서였단다.




“학술기자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시인 김지하를 밀착 취재하라는 거에요. 대학 시절 저의 우상이었던 김지하는 ‘죽음의 굿판’ 사건을 계기로 외려 혐오의 대상이 되고 말았는데. 먹고 살려고 김지하 시인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회사 입맛에 맞는 기사를 생산한다는 것에 회의가 들더라고요. 그냥 뒤도 안 보고 사표를 냈죠. 물론 그 일이 계기가 된 것이지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닙니다.”




사표를 낸 뒤 그는 무작정 충남 태안의 천리포 수목원으로 칩거했다. 핸드폰도 받지 않고 자신만의 ‘완벽한 고요’를 즐긴 것이다. 그 휴식은 그리 길지 않았다. 99년 말 닷컴 열풍이 불면서 ‘컴퓨터 도사’로 통하던 그를 원하는 곳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뉴스 사이트 관리자 겸 칼럼니스트, 나무 매니아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가진 그는 ‘바이오’와 ‘디지털’의 전도사로 통한다. 매주 뉴스레터를 통해 나무 이야기를 전하고, 방송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면서 나무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했다. 컴퓨터와 나무와 관련돼 쓴 책만도 몇 권이나 된다.




사표를 내고 천리포 수목원에서 휴식을 취하던 시절, 혹한의 서설에 활짝 피어난 목련을 만난 후 그는 나무 매니아가 됐다. 전국에서 좋다는 나무를 모조리 찾아 나선 것은 물론 그 안에 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는 작업에 나섰다.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애마인 사륜구동차를 타고 나무 순례에 나선다. 한 해 4만 키로미터씩 전국 방방 곡곡을 누볐다. 지난 4년간 다닌 거리를 합치면 대한민국을 몇 바퀴 돌았을 정도다. 천연기념물이나 희귀한 나무는 10번씩 찾아간 적도 있다.




“나무가 주는 느림과 여유에 중독됐죠(웃음), 나무도 사람과 똑같아요. 나무들도 경쟁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서로를 죽이진 않죠. 그리고 다른 나무가 햇볕을 받을 수 있도록 다른 잎이 비를 맞을 수 있도록 자리를 양보하는 생명의 신비는 인간에게 상생의 교훈을 던져줍니다.”




직장 생활을 오래하던 사람이 조직의 울타리를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닐 터, 사표 낸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을까?




“프리랜서로 뉴스 사이트를 관리하고 여기 저기 나무에 관련된 글을 기고하면서 용돈 정도는 벌고 있지만 수입을 생각하면 내가 왜 회사를 그만 뒀을까 자책을 할 때도 있죠. 그러나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하면 후회 되지는 않습니다. 보고 싶은 나무를 만나러 다니고,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자유가 저에게는 더 소중하니까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그는 충분히 자유로워 보였다. 물론 그 자유를 누리기 위한 최소한 경쟁력을 그는 갖고 있다. 나무 전문가일 뿐 아니라 해박한 컴퓨터 지식을 활용해 뉴스 사이트를 기획하고 대학에 강의도 나간다. 철저히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에 가능한 자유인 것이다.




그는 웰빙도 다운 쉬프트도 생소하다고 했지만, 고속도로에서 우회해 국도를 택한 그의 삶은 분명 '다운쉬프트'였다. 초고속을 고집하기보다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가는 것이 연비도 절약하고 차의 수명도 늘리는 것처럼, 그의 삶엔 느림과 여유가 주는 미덕이 있었다.




“아내와 약속을 했어요. 60살쯤 은퇴를 하면 도보 순례를 하기로요. 지금 당장은 아이들 교육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그때가 되면 전원 생활을 할 겁니다. 오전에는 희랍어를 공부하고 오후에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첼로를 연주하는 게 꿈이지요.”




느리게 가는 삶으로 빠르게 가는 세월을 붙잡은 듯한 그의 얼굴은 내일로 예정된 나무와의 데이트를 기대하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박찬희 (2004.12.22 14:13)
고품격의 삶의질과 여유가 경외스럽기 까지합니다.
박현숙 (2005.05.05 18:37)
그 첼로연주 늦은 가을 해질녘이면 더욱 멋있을텐데요. 그즈음이면 첼로연주곡듣는것을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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