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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 많던 나무는 어디로 갔을까 - 리브로 2003. 4 날짜 2004.06.19 14:50
글쓴이 고규홍 조회 3216
인터넷 서점 리브로 2003. 04

그 많던 이 땅의 큰 나무는 어디로 갔을까


화성 서신면 풀푸레나무,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정선 봉양리 뽕나무, 보은 백송, 순천 쌍암면 이팝나무… 콘크리트 장벽에 갇혀 사는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없는 큰 나무들이다. 인간이 자연을 떠나 도시라는 문명의 성채를 쌓기 시작하면서 멀어진 것 중의 하나가 나무다. 매연에 검게 그을린 채 도시 경관의 구조물로 박혀 있는 가로수 외에는 도통 나무라는 것을 만나기 힘들다. 더욱이 수령이 몇 백년씩 되고 덩치가 몇 십 미터나 되는 아름드리 나무들은 만나는 것 자체가 행운이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나무들이 우리 곁을 하나 둘씩 떠나고 있는 것이다.

<이 땅의 큰 나무>는 바로 우리 곁을 떠나고 있는 나무들, 그 중에서도 큰 나무들과의 만남을 기록한 보고서다. 이 책의 저자는 오랫동안 나무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온 ‘나무꾼’. 인터넷 웹사이트에 ‘나무읽기’와 같은 글쓰기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나무를 소개하는 일과 함께,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학술팀장으로 있는 한 수목원에서 나무와 함께 보내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삶의 자연스런 흔적이다.

하지만, 저자의 이런 경력만을 보고 지레짐작으로 이 책이 수목원에 들어앉아 거기의 나무들을 분류해서 쓴 나무도감일 것이라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이 책은 발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큰 나무 가운데 27종 130그루를 선정해 수종별로 그 나무들을 직접 찾아가 쓴 답사기다. 나무의 선정은 물론 취재과정도 꼼꼼하게 챙겼던 출판사 편집자에 따르면, 여기에 나오는 130그루의 큰 나무는 무리지어 자라는 숲의 나무가 아니라 예부터 우리 조상들과 삶을 함께한 독립된 노거수(老巨樹)들로, 대표성·향토성·심미성·역사성 등을 고려해 선정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이 땅의 큰 나무들을 찾아갔을까.

“나무는 우리에게 나무살이만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이 땅의 큰 나무들은 오히려, 우리들의 삶 깊이 감춰진 속살을 고스란히 보여주었습니다. 그 어떤 큰 나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땅의 큰 나무는 그렇게 우리 삶의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수백 년을 살아오는 동안 나무가 간직한 아픔은 곧 나무와 함께 살아왔던 우리 삶의 아픔이었고,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오연히 서 있는 나무는 곧 우리의 아름다움이고 진실이었습니다. 나무를 찾아가는 길은 그래서 우리 삶의 알갱이를 찾아나서는 일이었습니다.” (머리말 중에서)

나무가 풀과 달리 그 크기가 엄청난 것은 줄기에 있는 형성층의 분열에 의해 물과 양분의 이동통로인 물관부가 비대생장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무가 나무인 것은 크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맞고 서있는 나무는 곧 우리 삶의 알갱이이기도 하다. 이 땅의 큰 나무를 찾아 나선 여정에서 이 책이 정작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 큰 나무들이 품었을 속 깊은 세월과 잃어버린 우리 삶의 한 조각이 아니었을까.

이런 메시지와 함께 이 책은 그 자체로도 무게가 나간다. 저자와 사진 작가, 그리고 출판사 편집자가 1년 동안 전국 각지의 나무들을 돌아보고 쓴 나무 답사기답게 현장의 생생함으로 가득하다. 오늘 현재 이 땅의 큰 나무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풍부한 사진자료(거의 대부분 직접 찍은 것이다)는 물론이고, 직접 현장을 답사하고픈 사람들을 위해 ‘나무 찾아가는 길’을 지도로 자세히 표시했다. 또, 나무가 거처하는 마을을 방문해 나무의 외관이나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을 직접 취재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북한 땅에 있는 큰 나무들의 이야기들이 누락될 수밖에 없는 시대적 한계다.

이 책을 보면서 가장 혹했던 나무는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순천 쌍암면의 이팝나무였다. “아름드리 큰 나무임에도 모내기 철만 되면 눈처럼 아름다운 꽃이 가득 피는” 이팝나무는 풍년의 마음을 품고 있는 나무다. “질박함에서 우아함으로, 다시 화려함에서 슬픔까지” 다양한 표정을 지닌 이팝나무처럼 이 땅의 큰 나무들도 저마다의 표정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이 책은 그 다양한 표정들과 마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박정철/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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