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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는 사람의 마음만큼 자란다 - 오마이뉴스 2007.06.05 날짜 2007.06.05 17:25
글쓴이 고규홍 조회 2907
 

나무는 사람의 마음만큼 자란다


[서평]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의 <옛집의 향기, 나무>


    김현자(ananhj) 기자    





2006년 4월 4일 천연 기념물(천연기념물 제470호)로 지정된 화성 전곡리의 물푸레나무는 수령 350여년 추정의 노거수이다. 이 나무는 높이 약 20m, 가슴높이 줄기둘레 4.68m로, 물푸레나무로는 보기 드물게 크고 아름답게 자랐다.





물푸레나무는 크게 자라는 활엽수로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다. 하지만 화성 전곡리의 나무처럼 아름답고 크게 자라기란 힘들다.





목재의 재질이 단단하여 괭이자루 등 각종 농기구나 생활 용품 등을 만드는데 워낙 유용하게 쓰여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무껍질은 건위제나 소염제 등의 한방 재료로 사용한다. 때문에 노거수로 자랄 수 있는 세월이 모자란다.





화성 전곡리 물푸레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 전에 유일했던 천연기념물 물푸레나무는 파주 적성면의 수령 150년짜리. 이보다 훨씬 크게 자란 나무가 화성의 물푸레나무다.





화성 전곡리의 이 물푸레나무는 6.25이전까지 마을 주민들의 신앙적 대상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나무에 의지하여 가뭄이 들면 단비를 기다리며 기우제를 지냈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제(당굿)를 지냈다. 뭇사람들의 억울한 하소연인들 듣지 않았으랴.





화성 전곡리의 물푸레나무는 사람들과 슬픔과 기쁨을 함께 한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나무가 영영 묻힐 뻔했다. 이런 나무를 일아 본 사람은 고규홍씨. 어떤 단체가 아닌 개인이 신청하여 천연기념물이 된 유일무이한 경우다.





<옛집의 향기, 나무>는 화성 전곡리의 물푸레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게 한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의 신간이다. <이 땅의 큰 나무>, <절집나무>, <알면서도 모르는 나무 이야기>로 이미 국내 노거수에 관한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걸로 인정받은 저자가 사람들의 사연을 품고 있는 노거수 23그루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다.





시조작가로 시조의 현대적 부활을 위한 신운동과 고전 발굴 연구에 힘썼던 국문학자 이병기. 민족의 말과 글을 보존하기 위한 청소년 교육에 힘쓰다가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투옥(1942년)되었던 가람 이병기.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선생의 생가 앞마당에는 탱자나무 한그루가 정원수로 꼿꼿하게 서 있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조국의 얼을 지키기 위해 타향 멀리에서 생활해야 했던 선생은 항상 고향을 그리워했다. 선생이 이승에서의 삶을 마치는 순간까지 지켜보았을 저 한그루의 탱자나무. 이 집의 탱자나무만큼 곧게 서 있는 탱자나무를 아직 본적이 없다. 결코 곧게 자라는 나무가 아닌데, 어쩌면 이렇게 올곧게 자랐을까? 나무도 키우는 사람의 색깔과 분위기를 따르는 것일까. 갖은 협박과 압제에도 굴하지 않았던 선생의 이미지를 그대로 빼어 닮았다. 오래된 옛집에서 겉은 사뭇 온유해 보이지만 서릿발 같은 가시를 세운 아주 특별한 탱자나무 한그루를 만난다.-이병기 생가의 노거수 탱자나무 편에서.





워낙 크고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가지가 서로 엉켜들면서 자라다 보니 울타리로는 그야말로 적격인 나무가 탱자나무다. 오죽하면 적의 침입을 막고자 성의 울타리로 심었을까. 인천 강화도에 가면 성의 울타리로 심어진 탱자나무들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여염집의 울타리로 즐겨 심던 탱자나무, 과수원 울타리로 즐겨 심던 탱자나무, 시골 학교 울타리로 심어지던 나무, 어쨌거나 탱자나무는 울타리로 기억되는 나무다. 하지만 선생의 생가 탱자나무는 마당 한가운데 우뚝, 당당하게 서 있는 조경수다.





선생의 조부가 심었다는 이 나무는 200살가량으로, 현재 전북 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되어 있다. 탱자나무가 제일 길게 자라는 높이는 3m가량, 하지만 이 나무는 현재 5m에 줄기 둘레만 60cm라니 놀랍다. 주인의 꼿꼿함을 먹고 자란 나무라 이처럼 꼿꼿한 걸까?





옛사람의 사연을 간직한 나무는 이것만이 아니다. 대구 도동서원의 은행나무는 연산군 4년에 무오사화를 일으킨 김종직의 제자라는 이유만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김굉필을 그리워하는 어떤 이가 심은 것이다.





도동 서원의 상징목인 이 나무의 수령은 400년가량. 김굉필의 죽음을 아파하는 사람들이 바라보며 마음 달랬을 나무요, 역적의 자손으로 앞날이 막힌 후손들의 몰락을 아프게 바라보았을 나무다. 억울한 죽음을 하소연 한 나무, 그 가지 하나가 땅을 기듯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어찌나 크던지, 30년 전에 가지 하나가 부러졌는데 부러진 그 가지하나가 8톤 트럭 하나를 가득 채웠다고 한다.





우리나라 마지막 주막으로, 문화재 지정을 할 거라는 '예천 삼강리 주막'에는 한그루 회화나무가 쓸쓸하게 서 있다. 예로부터 선비집안의 이삿짐에 반드시 챙겼다는 학자수인 이 나무는 양반가 사랑채에나, 서원 혹은 누각에나 어울릴까 주막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강변 가 주막에는 버드나무나 어울릴 듯하지만, 버드나무 대신 서 있는 것은 한 그루 회화나무. 2005년 10월 초하룻날에 죽은 우리나라 마지막 주모를 회상하는 듯 서 있는 이 나무가 있는 주막은 예전에는 낙동강을 나룻배로 건너 온 사람들이 반드시 머무르던 곳이다. 그러니 이 나무는 수 백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지켜보았으랴.





이 회화나무뿐일까? 나주 쌍계정의 푸조나무, 봉화 청암정의 왕버들, 담양 면암정의 굴참나무, 화순 물염정의 벚나무, 정선 고학규 가옥의 뽕나무, 예안 향교의 무궁화 등 전국 옛집에서 사연 특별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을 나무 23그루가 책 속에 등장한다.





모 일간지 12년 기자 생활을 접고 10년 동안 나무만 쫓아 매해 5만 킬로를 작정하고 다니는 저자가 어떤 날은 수백리 길을 갔음에도 나무가 마음을 열어 주지 않아 되돌아 온 사연이 있거나, 이미 본 나무이건만 님 보듯 그리워서 설렌 마음으로 찾았던 나무 등이다.





나무를 좋아하는 터라, 정확히 말하면 잎이 돋기 전의 나뭇가지들을 좋아하여 삶의 위안을 그들로부터 어지간히 받기도 하는 터라, 나무 이야기나 실컷 들어 보자고 선택한 책이었다. 특별한 나무들을 덕분에 어지간히 만났다.





무엇보다 각별하게 얻은 것이란, 나무는 저를 아껴주는 사람의 마음을 먹고 자란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를 바라보아주는 사람을 거울삼아 그 모습을 닮아 자란다는 것이다. 또한, 나무 한그루를 통하여 만나는 역사나 옛집의 향기, 옛사람들의 고단한 세월을 만나 봄도 자못 남달랐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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