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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년고찰 묵묵히 지켜온 나무 이야기-현대불교신문 날짜 2004.07.02 23:15
글쓴이 고규홍 조회 3291
천년고찰 묵묵히 지켜온 나무 이야기


한국의 사찰들은 모두가 우리의 오랜 역사와 문화의 한켠을 말없이 지켜주는 전통문화의 증거물들이다. 각 절집마다 오래된 이야기와 기록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는 말없이 사람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사람살이를 지켜본 나무가 있다. 어쩌면 사람들이 남긴 한 줄 의 글귀보다는 더 담백하고도 깊은 이야기들이 나무 줄기 속에 깊숙이 배어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절이 세워지기 전 또는 세워지던 때부터 절 마당에서 자라온 절집 나무는 그간의 역사를 속내에 고스란히 간직한 채 여전히 생동하는 ‘살아있는 역사’다.

<절집나무>는 대표적인 천년 고찰 33곳 나무들의 생태와 전해져 내려오는 일화와 전설 등 나무에 얽힌 흥미롭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땅의 큰나무>의 저자 고규홍 씨와 사진가 김성철 씨가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췄다.

책을 쓰기 위해 이들이 직접 돌아본 절집만 해도 모두 170여 곳. 사계절 내내 12만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이것은 전국을 다섯 바퀴 이상 순회한 것과 맞먹는 수치로, 그야말로 ‘발로 쓴 책’이라 할 수 있다. 170여 곳 중 33곳을 추려내는 작업 또한 만만치 않았던 일 중 하나. 나무에 대한 온갖 다양한 정보와 이야기들을 솜씨 있게 버무려낸 저자들의 노고가 돋보인다.

이 책은 한마디로 절집나무 백과 사전이다. 절집나무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 나무와 사찰에 얽혀 있는 전설과 역사, 나무의 주변 환경과 어우러진 위치, 그리고 생물학적 생태까지 종합적으로 소개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흥미로운 일화 중심으로 읽어 내려가면 책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화순 쌍봉사 극락전앞에는 단풍나무 두 그루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나무 줄기에 심한 그을음이 남아있는데 바로 쌍봉사가 화마에 휩싸였을 때 제 몸을 불사르며 극락전(서방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을 지켜낸 기특한 나무이다. 이 나무 덕분에 아미타불은 목숨(?)을 구했다. 그러니 단풍나무에 서려 있는 불성(佛性)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자신의 성(性)을 바꾸면서까지 사찰을 지킨 전등사 은행나무도 흥미거리다. 조선후기 조정은 불교탄압의 구실로 전등사 은행나무 열매의 공출량을 정했다. 당시 전등사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세금’이었다. 이를 못 견딘 스님들은 “차라리 이 나무를 암나무에서 수나무로 바꿔달라”고 기도했다. 이 기도대로 암나무는 수나무로 성전환했고 공출량을 정할 수 없었던 조정은 더 이상의 탄압을 포기했다.

하나 더 소개한다. 정선 정암사에는 오래된 주목이 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중 하나인 정암사는 자장율사가 신덕여왕 7년(638년)에 세운 절집이다. 그런데 자장율사는 자신의 주장자를 신표로 꽂았고 이것이 주목이 됐다. 하지만 이 주목은 언제인지 모르지만 죽어버렸다. 그런데 최근들어 껍질만 남은 나무 안쪽에서 새로운 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장율사가 다시 돌아와 자신의 분신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것인가.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이밖에도 저자들이 발품을 팔아 꾸민 이 책에는 부처님의 은덕으로 숲 전체에 퍼진 오대산 상원사 전나무, 백범 김구의 나라사랑을 담은 공주 마곡사 향나무, 해마다 막걸리 열두말을 먹고 원기를 찾는 청도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 정조 임금이 부모의 은공을 기리기 위해 지은 용주사에 손수 심은 회양목, 천하의 간신배인 유청신이 몽고에서 몰래 들여와 심은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 등 사람과 어울려 사는 절집나무들의 사연이 담겨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 그동안 사찰에 가서 경내에 있는 나무들에 등한시 했다면 이 책은 더욱 읽는 의미가 있다. 사찰의 역사는 풀한포기, 나무 한그루에도 짙게 묻어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 책이 사찰 여행 가이드 북으로도 손색이 없는 또하나의 이유는 책 말미에 사찰 찾아가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는 것이다. 김주일 기자 jikim@buddhap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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