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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베토벤은 알뜰해야만 했다 -조선일보 날짜 2008.12.29 15:58
글쓴이 고규홍 조회 3661
 

베토벤은 알뜰해야만 했다


조선일보/입력 : 2008.12.26 21:52 / 수정 : 2008.12.27 09:16





베토벤의 가계부


고규홍 지음|마음산책|260쪽|1만2000원





"참된 예술가라면 누구나 예술 작품 외의 다른 직무나 경제적 보수 따위에 구애받지 않기를 열망하게 마련이다. 작품 창조에 전념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때그때 적당한 생계 대책을 마련하는 데 골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작곡가 베토벤이 39세에 남긴 기록은 예술가의 자의식과 그를 둘러싼 환경 사이에 생길 수 있는 날카로운 긴장을 명쾌하게 압축한다. 실제 베토벤의 삶이 그러했다. 궁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창작에 매달리고자 했지만 대가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막내 동생에게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썼지만 "형의 궁핍은 형 스스로 선택한 것이니 책임도 형 스스로 져야 할 것입니다. 토지 소유자 동생 요한"이라는 쌀쌀맞은 답신이 날아온다. 격분한 베토벤은 "너의 돈은 필요 없다. 너의 설교도 필요 없다. 두뇌 소유자 형 루트비히"라고 적는다. 형의 '두뇌'는 지금껏 전해지지만, 동생의 '토지'는 간 곳을 알 수 없으니 역사는 공평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베토벤은 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스승 하이든과 함께 마신 커피 6크로이체르, 초콜릿 22크로이체르"처럼 손수 가계부를 일일이 적는 수고를 감내해야 했다.





언론인 출신의 칼럼니스트가 음악가의 생계라는 독특한 관점에서 적어나간 음악 에세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얻은 기교'라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최고의 명성과 인기를 누렸던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는 고액 연주료로 넉넉한 삶을 살았지만, 정작 사후에는 신앙이 없고 기독교인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일종의 괘씸죄에 걸려 교회 묘지에 매장되는 것을 거부당했다. 그의 시신은 13년간 병원 안치실과 별장 등을 떠돌아다녀야 했다.





〈환상 교향곡〉의 작곡가 베를리오즈는 의대생 시절 의학 공부는 뒷전으로 제쳐놓고 오페라 극장을 전전하거나 자비 연주회를 열다가 격분한 아버지가 송금을 끊는 바람에 합창단 활동과 개인 레슨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사실(史實)과 소문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한 대목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유쾌하면서도 가볍게 읽기에 모자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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