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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개발할 땐 초목에게도 입주권을 줍시다 날짜 2008.09.27 12:21
글쓴이 고규홍 조회 3557
 

개발할 땐 초목에게도 입주권을 줍시다 


일간 건설경제/[2008-9-8] 





[뉴스를 클리핑하며]





얼마 전 새로운 형태로 크게 달라진 ‘일간 건설경제’에 실린 제 인터뷰 기사입니다.





[뉴스 원문 보기]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씨





나무칼럼니스트라는 독특한 직업명을 가진 고규홍(49)씨에게는 책이 너무 많이 들어차서 아예 사람을 밀어내버린 희한한 서재가 있다. 무슨 책 욕심이 이리도 많은 걸까. 사진을 찍으려 포즈를 취하기에도 비좁은 책의 숲은 영혼의 피톤치드가 뿜어나오는 그의 밀림일까.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 책을 보니까 진짜로 나무와 얘기를 나누는 것 같던데.





예전에 조용미 시인이 이런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하루는 나무가 너무 보고 싶어 산에 갔는데 허리가 너무 아파 도저히 끝까지는 못 가겠더라는 거다. 그래서 산 중턱의 스님들 요사채에 누웠단다. 나무 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작은 창 하나 빼고는 사방이 막혀있는 방에 누워있으려니 그 양반 기분이 어땠겠나. 그런데 그 순간 작은 창을 통해 바람이 불어오더란다. 그토록 보고 싶던 갈참나무, 소나무가 묻어있는 바람이 말이다. 그때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까불고 있네.’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간절함이 통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간절히 원하면 나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나무를 자유롭게 만나러 다니는 사람인데 가면 되지 간절히 원할 게 뭐 있나.





몸이 하나니까. 예를 들어 매화꽃이 피는 계절이면 보고 싶은 매화나무는 너무 많은데 볼 수 있는 나무는 한정되어 있잖아. 그러면 올해 못 본 나무들은 내년에 보러갈 수밖에 없다. 그 1년이란 시간 동안 올해 못 본 매화나무에 대한 그리움이 쌓인다. 나에게 간절함이란 그런 그리움이 쌓여가는 과정이다. 간절하게 보고 싶어 찾아 갔을 때 매화꽃을 활짝 피운 나무가 나를 맞이하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 완전 감동이지. 난 정말 나무에 미쳐있는 것 같다.





12년간의 기자생활, 생활의 편안함을 물리치고 수목원으로 향했을 때 그의 짐 속엔 쌀과 김치, 그리고 달랑 2권의 책이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하루 종일 산책하고 바닷가에 앉아 해가 퐁당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규홍씨는 목련꽃을 발견했다. 싸락눈이 내리는 한겨울이었다. 충격이었다. 그동안 몸에 배어있던 시간의 흐름이 완전히 어그러지는 것 같았다. 언제나 한자리에서 묵묵히 꿈을 피우는 나무에게서 그는 전율을 느꼈다, 그날 그는 나무만을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와 책장에 있는 시집들을 몽땅 꺼냈다. 나무에 관한 시만 4천여 편이었다. 이듬해 5월, 그는 첫 번째 책을 낸다. 나무와 시(詩)의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올해 3월에 나온 <나무가 말하였네>는 그의 6번째 책이다.





“저는 80살까지 계속 책을 쓸 거예요. 다들 아직도 나무에 대해 할 얘기가 남았느냐고 묻지만 못한 얘기들이 훨씬 많아요. 아직 못 본 나무도 많지만, 나무도 사람같이 어제와 오늘이 다르거든요.” 그러더니 우스갯소리라면서 진지하게 말한다. “건설경제신문이니까 이 얘기 꼭 하고 싶었어요. 오래된 나무들 있잖아요, 그런 거 개발한다고 베면 벌 받아요.” 기자가 쿡, 웃으니까 그도 따라 웃는다. 그러다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이거 거짓말 아녜요. 몇 백년 동안 기를 쌓은 나무들이에요. 걔네들 죽이면 천벌 받는다니까.”





그런 사람이 왜 환경운동이나 나무보호운동 같은 데 참여 안 하나?





난 원래 단체 활동 좋아하지도 않지만 솔직히 그 사람들 논리에 동조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환경운동은 생태 신비주의에 가깝다. ‘무조건 보호하자’거든. 그러면 사람보다 자연이 우선시 되잖아. 사람도 같이 살아야하는데. 사회학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면이 있는데 그러질 않으니까 아쉬운 점이 있지. 무조건적인 개발반대가 아니라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 나무도, 사람도, 동물도 각자 자기 영역에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살아야 한다. 고민도 필요하고 시야도 넓혀야 한다.





그렇지만 개발 때문에 나무가 사람들의 삶 밖으로 쫓겨나지 않았는가.





글쎄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세 가지가 스키장, 골프장, 그리고 무덤이다. 그렇지만 아파트는 좀 다르다. 이거 아나? 오히려 시골보다 도시의 아파트촌에 나무 개체수가 더 많다는 거. 조경법 때문에 건설업자들이 나무를 많이 심거든. 내가 만날 하는 소린데 단풍 보러 오대산 같은 데 갈 필요 없다. 아파트 안에 단풍들 얼마나 예쁜데. 나무는 우리 삶 속에 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누구나 나무의 얘기를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멀리서 찾으면 안 된다.





건설 분야 사람들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 없나.





불만 하나만 꼽아볼까. 가로수 조경사업 말이다. 너무 단조롭다. 벚나무 인기라니까 죄다 벚나무만 심어놓고, 다양성이란 게 전혀 없어. 제일 좋은 가로수가 뭔지 아나? 근처 산에서 나무를 끌어오는 거다. 그 동네 식생에 맞는 나무거든. 이런 나무들로 가로수 심으면 서로 상생작용을 해서 잘 자란다. 그래야 생태계도 다양해지고.





고규홍씨가 갑자기 재미난 얘기가 생각났다며 껄껄 웃는다. 나무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후, 부천의 집에서 시청까지 가면서 나무를 세어보니 33종류였단다. 자귀나무, 벚나무, 꽃사과나무, 쥐똥나무부터 그 흔한 개나리까지. 지금 다시 세어보면 70종류는 나올 거란다. 아는 만큼 보이고, 관심 있는 만큼 느낀다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는 거다. 가만히 나무를 세는 남자. 문득 시 한 편이 생각난다.





산에 와서 문답법을/버리다//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구름을 조용히 쳐다보는 것//그렇게 길을 가는 것//이제는 이것 뿐//여기 들면/말은 똥이다(이성선의 ‘문답법을 버리다’)





최지희기자 jh606@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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