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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일정
제목 동경대 사토 마나부 교수와 한양대 임지현 교수 날짜 2002.02.15 10:29
글쓴이 고규홍 조회 473
동경대 교육학과의 사토 마나부 교수가 방한했다. 서울대 교육학과 주최의 '일본에 있어서
의 교육사 언설의 패러다임의 전환-일본 역사수정주의의 비판'이라는 주제의 특별 강연회
에 참석하기 위한 것. 일본 역사 교과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일본 신자유주의자들
의 우익민족주의 경향에 대해 철저한 비판의식을 가진 사토의 의견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
가올 것이다. 특별히 사토 교수와의 대담은 최근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소나무)라는 저서
를 출간, 국내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민족주의론에 대한 경계와 반성을 제기한 한양대
사학과 임지현 교수가 맡아주었다.

임지현:반갑습니다. 당신의 흥미로운 글 '개인 신체 기억으로부터의 출발'을 보면서 이탈
리아의 기호학자이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10살때인 42년 에
코는 '무솔리니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주제의 글짓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사토 마나부:재미있군요. 그렇게 어린 소년에게도 신체의 기억이 남는 법입니다. 그것이
곧 역사를 바라보는 출발점이라는 게 제 글의 논지입니다. 에코에게서 보듯이 국가의 역사
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신체에 얽혀 있는 구체적인 것에서 시작됩니다. 에코가 파시즘을
극렬하게 반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니 그가 왜
그토록 파시즘에 비판적이었는지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임:어린 에코가 당시의 국가이데올로기에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고 한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해 봅시다. 얼마 전 보도에 의하면 일본의 교과서는 도리어 더 군국주의화 경향을 보이
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같은 현상이 가능하게 되는 일본 전반의 사회적 분위기를 알고 싶습
니다. 역사왜곡을 주도하고 있는 '자유주의 사관 연구회'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위한 모임'
과 같은 집단이 일본 사회에 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사토:일본의 신 국가주의 혹은 신 군국주의는 현대화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일본
은 자유의 확대라는 차원에서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추진하고 있지요. 일반적으로 국가간의
차이를 최대한 줄이는 과정에서 국가주의는 극복된다고 보지만, 거꾸로 종교 민족 문화 집
단간의 차이는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신 국가주의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합니다. 특히
일본의 신국가주의를 주도하는 데에는 안보와 반미를 내세우는 그룹이 있습니다. 이들은 안
보 반공을 표면적 이슈로 내걸지만 내용적으로는 반미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본의
군사동맹을 지향하는 입장이지요. 또 하나의 세력은 전통적인 우익세력입니다. 그들은 특히
적이라고 상정했던 소련이 붕괴되자 함께 붕괴된 세력입니다. 그런 흐름 속에 좌익은 우익
으로 흘러들어갑니다. 이 두 세력은 전후에 전쟁의 책임을 단지 군부에만 물었습니다. 그리
고 일본은 파시즘 국가에서 국가주의 국가로 변화했지요. 이 과정에서 전쟁에 대한 기억들
을 모두 소거하려고 했습니다. 이들은 전쟁은 나쁜 것이 아니었으며 정의와 아시아의 근대
화를 위해 싸운 것이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련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기 위해 전
쟁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임:냉전체제가 붕괴되기까지 좌파와 우파의 밸런스가 있었다고 했는데, 일본의 경우 국제
주의에 입각해 있다기보다는 내용적으로는 민족주의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
본의 좌익 계열인 '역사교육자 협의회' 설립 취지문의 첫 문장은 '우리는 끝없이 조국을 사
랑한다'라고 돼 있지요. 좌파라 해도 핵심에는 민족주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토: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냉전 이후 일본 공산당이 가장 초점을 맞춘 것은 민족주의의
강화였습니다. 즉 일본의 전후 미군정에 의해 시작됐다. 일본 공산당은 처음에는 미국의 일
본 점령을 철저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가졌고, 현재까지 민족주의를 더 강화하는 쪽으로 흘
러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일본 민족 전체의 책임인 전쟁에 대한 반성을 충분히 치르
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시아에서의 식민지 침략에 대한 죄상을 추궁당하지 않았다는 이야
기입니다.

임:일본의 좌파와 우파가 민족주의를 공유했다는 점에 동의하시는군요. 사실은 한국사회
에서도 그런 현상은 발견됩니다. 자기들은 좌파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담론은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좌우가 담론의 바탕을 함께 하다 보니 논쟁이 이
루어지지 않는거죠. 이상하게 엉켜 있다는 것입니다.

사토:여기서는 보충할 게 있다. 1982년에 교과서 사건이 있었다. 침략과 진출의 문제였다.
일본에서는 가해자의 문제를 어떻게 진술할 것이냐의 문제가 있었다. 가해자의 책임에 대해
논의를 제기했다.

임:전쟁 책임에 대한 이야기인가요?

사토:지금까지 무시했던 전쟁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발언이 나오기 시작한다는 거지요. 교
과서 왜곡과 함께 반대 의견이 나온 거죠. 전쟁 반대에 대한 여론도 나왔어요. 공산당의 경
우는 천황제를 반대하자는 입장에서 전쟁을 반대했지요.

임:좌파들이 알게 모르게 민족주의에 물들어 있었다는 게 부인할 수 없군요. 그러한 면이
일본 신 민족주의의 배경이 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이제 그렇다면 교과서 문제를 봅시다.
학교는 국가의 지배이데올로기를 관철시키는 기관이 아닌가 합니다. 선생은 국민이나 민족
일반으로 추상화된 역사를 개인의 역사로 해체함으로써 데리다의 해체 방법론을 이용해 민
족사의 신화를 부수는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그것은 사회의 기층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규
율권력을 폭로하는 데 매우 유용한 전술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개인
대 개인의 역사로 전화하는 측면이 있지 않나요. 그렇게 되면 현안이 되는 종군위안부 문제
도 일본 정부가 배상하는 게 아니라 민간 배상의 문제로 결론지어지는 위험성은 없는지요?

사토:일본에서 종군위안부 문제는 일정한 나이 이상의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문제입
니다. 단지 문제화하지 않았을 뿐이지요. 이제까지의 모든 역사는 피해자 가해자 식의 추상
적이었어요. 이러한 언설을 무너뜨린 것이 1997년의 김학순 할머니의 방일이었습니다. 김학
순 할머니는 40년 이전에 겪은 개인의 신체적 기억들을 증언하면서 국가의 배상을 구했지
요. 한 개인이 등장함으로써 일본 정치세력들은 국가 차원의 배상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아
가서 당시 참전 병사들도 증언하게 됐답니다. 더욱이 그런 사람들은 증언 중에 전쟁과 관련
된 사람들의 개인 이름까지 들춰내며 증언했습니다. 출발은 개인의 신체 기억으로부터 하되,
국가 배상 차원의 반성은 이루어져야 합니다.

임:개인의 역사도 중요하지만 역사는 현재와 미래가 이어지는 집단의 기억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추상을 해체함으로써 드러난 개개인의 역사는 어떻게 집단의 역사로 재구성해야
할는지요. 특히 진정한 해체는 1차적인 해체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재구축으로 이어져야 하
겠지요. 선생의 이론은 국가 역사의 해체까지는 성공적이라고 보이는데, 재구축의 의미를 현
실화하는 데까지는 나가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토:종군 위안부 문제가 구체적인 예가 된다. 개인적인 신체의 기억이 나타나면 국가주
의 역사 허구이고 대상조차 불투명한 독백에 불과하다는 게 드러납니다. 일본의 역사수정주
의자들은 전쟁에 의해 희생된 20만명의 사망자조차 없었다고 부정해 버립니다. 그들은 또
모든 역사란 국가 중심의 역사이고, 개인의 역사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마치 국익을
위한 게 곧 역사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남경대학살을 부정하고 종군위안부는 매춘부였다는
식의 엄청난 발언이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임: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과 같군요. 97년에 일본 사이타마 현의 공립 고등학교 학생들이
졸업식에서 히노마루 게양과 기미가요 제창을 요구하는 교장의 지시에 반발하고, 학생 권리
장전을 제정 선포하고 집단 퇴장한 사건이 있었지요. 고등학생들이 국익 우선의 의식 자체
를 거부하고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이러한 흐름이 일본 신세대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 지 궁금합니다.

사토:개인의 역사를 어떻게 집단의 기억으로 돌릴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일본의 신세대들
의 활동 중에는 최근 할아버지의 참전 지역을 방문하는 활동도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통
해 사실을 충분히 알게 되고, 일본의 침략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게 집단 기억을 형
성하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추상화된 역사가 아니라 개개인의 역사를 바탕으로 집단의 역
사를 만들어가는 것이지요. 또 개인의 기억을 집단의 기억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동시대
다른 사람들의 기억도 필요합니다. 특히 일본이 전쟁으로 피해를 주었던 동아시아 전체의
역사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죠.

임: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교과서 제작자들은 자꾸만 우익 민족주의의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이타마 현에서와 같은 움직임의 확대 전망은?

사토:그들은 히노마루와 기미가요에 반대한 게 아니었어요. 그들 중에는 기미가요 히노마
루를 긍정하는 아이들도 있었지요. 즉 그들은 학교라는 강제성에 반대한 것입니다. 개인이
어떤 역사와 사상을 가지는 지는 개인의 자유입니다. 학교에서의 의식을 반대했다는 거죠.
그들이 이야기하는 다양성이나 복수성은 개인의 역사를 집단의 역사로 전환시켜가는 전략이
된다는 것입니다.

임:그 사건에 대한 자유주의사관 연구회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위한 모임의 반응은?

사토:아무런 반응이 없었어요. 그들은 들을 귀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저 자기 이야기
만 선전할 뿐입니다.

임:한국에서도 국민의례를 포함한 각종 국가주의 의식이 그대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내용
이 천황 대신에 황국 내셔널리즘으로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건 정치권력 국가권력
이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유지시키기 위한 욕심이었다고 보입니다. 문제는 일본과 한국은 상
황이 다르다.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저
항민족주의의 긍정적 역할이 여전히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아직 민족주의가 호소력을 갖
고 있습니다. 한국이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한국만으로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의 역사 청산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가 선행 과제가 될 것입니다. 일본이 전쟁 책임이라든
지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으니까 한국 민족주의의 존재 근거가 있는 겁니다.

사토:그렇다. 한국민족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건 일본에 있다. 한국민족주의는 본질
적 문제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3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일본은 다민족 국가임에 비해 한
국은 단일민족국가여서 민족주의를 만들어내기가 쉽다는 것이다. 둘째 식민지 저항논리로
민족주의가 형성됐다. 셋째 민족이 분단돼 있다는 것이다.

그같은 한국 민족주의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일본은 결코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일본은 자발적으로 제국주의로 나아갔어요. 전후에는 미국의 식민지로 말려
들어갔지요. 민족주의를 민족독립으로 이어가는 좋은 민족주의와 다른 민족을 지배하는 나
쁜 민족주의가 있다고 분류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 분류를 반대합니다. 민족주의는 민족주의
일 뿐입니다. 민족주의는 근대화 과정에서 모든 국가가 피할 수 없이 경험한 것이지요. 문제
는 문화적 본질, 즉 문화적 본질주의에 있어요. 일본은 옛날부터 없던 것도 있었다고 주장하
는 경향이 있습니다. 50-100년에 불과하지만 옛날부터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 말입니다. 결
국 역사적 사회적 산물로 만들어진 것을 본질적인 것으로 보는 데 문제가 있지요. 그러다
보니 일본의 민족주의는 전쟁 책임에 대해 귀를 막고 있었던 겁니다. 그걸 지탱해주는 것이
결국은 일본이 고유한 문화가 있었다는 것이고, 그게 일본의 문화적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임:한국 민족주의와 일본 민족주의로 대변되는 국가권력의 지배이데올로기를 극복하는
것은 한 나라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작업은 한국과 일본이 연대해서 이루
어내야 합니다. 국가 차원에서 완수할 일은 아닙니다. 동아시아 민중들이 국가 역사라는 허
구가 강제한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
니다. 그렇게 보면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동아시아 민중의 연대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
어 나가는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토:종군위안부 문제가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97년 4월부터 일본에서 사용되는 5가
지의 역사교과서에는 종군위안부 문제가 실려 있습니다. 최근 10년간 중국의 남경대학살, 조
선의 창씨 개명 등도 실렸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증언 등 이야기에 의해 일본의 민족사는
다시 쓰여져야 합니다. 최근 이같은 흐름에 역행하는 조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점진
적으로나마 한국과 일본의 역사 작업은 조금씩이나마 진보하고 있습니다.

임:동아시아 과거 청산 문제는 각 국에서 진보적 역사가들이 다양한 교과서를 만들어내
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그 중 가장 먼저 선도해야 할 나라가 바로 일본이지
요.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한 사죄등의 작업이 있어야 비로소 동아시아 민중 연대가 가능하
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토:국가적 사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이 앞에서 이야기한 민족주의 역사를 넘어서
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이 가지는 전쟁 책임에서 사죄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
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교과서에는 아직 많은 문제를 빠뜨리고 있으며 정확하게 기술되
어 있지도 않아요. 게다가 교과서의 문구 한 두 개 첨가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
니지요. 사회 전반의 역사관이 바뀌어지지 않는다면 언제 다시 또 교과서를 바꿀 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또 교과서가 바뀌었다 해도 학습 지도 과정이 국가주의 역사관에 의해 지배
된다면 교과서 문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거죠.

임:독일과 폴란드는 서로 배상도 잘 했고, 현재는 정기적으로 민간 차원에서 교과서 서술
에 대한 모임을 갖고 내용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한일간에도 민간 차원의 역사교과서 서술
의 조율쪽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토:독일과 폴란드의 노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민간레벨의 해결책을 찾는 것은 앞으로
의 가장 큰 과제이며 기대도 큽니다. 이런 내용으로 한 일의 지식인이 만나 토론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발전이라고 볼 수 있으며, 더구나 이 대담이 한국의 대표적 신문에 기사로
실린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임:긴 시간 대담에 응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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