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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일정
제목 양궁 100년사의 최고 명궁 김수녕 님 날짜 2002.02.15 09:35
글쓴이 고규홍 조회 528
'양궁 100년사에 최고의 명궁' '양궁의 여왕' '소녀 신궁'등의 별칭으로
불려졌던 金水寧씨(26)가 '입신경지의 신기록'을 세우고 세계무대에 화
려하게 데뷔한 것은 지금부터 꼭 10년 전인 1987년 7월이었다. 충북 중
원군 대미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활을 잡았던 金씨가 청주여고
1학년생일 때의 일이다.

87년 6월 국가대표로 선발된 뒤 관계자들의 관심을 모으면서 金씨
는 이어 7월 프랑스 국제양궁대회의 오픈라운드 싱글 30m 경기에서
한국의 난적 소련을 제압하고 365점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세
계무대에 화려한 첫발을 내디뎠다. '신궁(神弓)'이라는 최고의 표현이
金씨에게 사용될 때 전혀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게 됐다. '김수녕'과
'신궁'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절묘한 조합이었다.

"저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사대에만 서면 평소보다 훨씬 좋은 기
록이 나오는 거였어요. 제 자신도 본래의 실력이 정말 그 정도가 되는
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어요. 돌이켜 보면 주변에서 저를 참 많이 도
와주셨다고 생각돼요."

金씨는 겸손하고자 애쓰지만 그의 기록만큼은 결코 겸허함의 한계
를 뛰어넘는 것이다. 金씨는 자기가 평소 실력보다 실제 경기에서 훨
씬 좋은 기록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격려가 가장 큰 힘이었
다고 회고한다.

88년 올림픽에서의 2관왕 기록에 이어 金씨는 92년 바르셀로나 올
림픽에서 2회 연속 2관왕이라는 기대에 도달하는데에는 실패했지만
그의 선수 경력은 놀랍기만 하다. 93년 가을, 13년간의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은퇴할 때까지 金씨는 한국신 33번, 세계신 39번 등
세계 양궁사 100년에 최고의 선수로 남았다.

"지도자로서의 생활을 생각해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사람마다 다 제
각기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봐요. 저는 그냥 '훌륭한 선수'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도자가 되려면 선수와는 전혀 다른 재능이 있어
야 할 거에요. 제가 그만큼 큰 선수로 자라는 데까지 저를 도와주신
훌륭한 선생님들만큼 후배들을 키울 수 있는지는 의문이에요."

은퇴 후 金씨는 고려대 체육과 1년 선배인 남편 李奇永씨(27)와 결
혼, 산본 신도시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양궁 외에 다른 스포츠에 별다
른 재능이 없는 金씨와 달리 만능 스포츠맨인 현재 고등학교 체육교
사 李씨를 김수녕씨는 '웬만한 탤런트보다 백배는 잘 생겼다'고 자랑
한다.

왕년의 신궁 金씨의 요즘 하루는 세 살배기 딸 지원이와의 시간으
로 메워진다. 지금은 옛날만큼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는 상황은 아니지
만, 그래도 거리에 나서면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서 뭔가 하지 않느냐
고 질문하기도 하지만, 金씨는 그냥 평범한 주부로 남겠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에요. 지금 생각으로는 아
이 키우는 일만으로도 벅찰 지경이에요. 운동을 할 때에는 운동에만
성의를 다하면 됐지요. 특히 양궁이라는 운동이 다른 어떤 운동과 달
리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저는 제 자신과의 싸움
에서 썩 괜찮은 능력을 지녔는지 모르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다
른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에는 참 모자란 사람이에요."

양궁보다는 주부의 삶이 훨씬 어렵다는 金씨는 이제 평범한 주부로
욕심없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겠다며, '날아간 화살에 미련을 갖지 않
는다'는 선수 시절의 신조와 마찬가지로 '지나간 세월에 미련을 갖지
않으며' 세월의 시위를 바싹 당기고 있다.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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